에리는 항상 시험기간만 되었다하면 감기에 걸리곤 했다. 이상하리만큼 시험 3주전부터 감기에 걸리곤 시험이 끝난 후에는 언제 아팠냐는 듯, 감기가 다 낫곤 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처음엔 어찌해야할지 몰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감기약을 사다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에리는 대학생이 되어서 고등학생 때보다 더 신경써야하는 시험들이 많아 진건지 고등학생 때 걸렸던 감기보다 이번엔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열은 심하게 올랐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에리는 학교에 가야한다며 꾸역꾸역 학교에 갈 채비를 했고, 나는 병원부터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오늘 전공수업이 중요한 수업이니 꼭 가야한다며 에리는 신발을 신는 도중에도 휘청거렸다. 그런 에리가 걱정이 되어 에리를 바라보니 에리는 괜찮다며 나에게 웃어 보인 후 집 밖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에리가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소파에 앉아 기다릴 뿐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같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에리는 우리 집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 각자의 전공이 달라 교양으로 밖에 같이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었고,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같은 교양 수업을 듣고 그랬었는데 올 해는 이상하리만큼 교양 시간이 안맞아 괜찮은 시간이 있다면 에리의 전공 수업이 있거나 내 전공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같은 경우에도 에리가 전공을 들으러 가는 동안 나는 그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에리의 수업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에릿치, 오늘 좀 많이 아파보이든데ㅡ 약이라도 사와야하나.
나는 집에 감기약이 남아있나 보려 서랍을 열었으나, 지난번에 다 먹었는지 그 많던 감기약이 없다. 다행히도 오늘 에리의 수업이 2시간 전공 밖에 없는 날이라 에리가 집에 오자마자 바로 침대에 눕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리가 돌아오려면 아직 1시간 가량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겉옷을 입고 지갑을 챙긴 후 집 밖으로 나섰다. 나온 김에 냉장고 안이 비워졌던게 생각나 장도 봐야할 것 같다. 에리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여유롭지만 빨리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약국으로 걸음을 향했다. 약국에 도착하니 내 얼굴을 기억하는건지 약사 분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주셨다.
“또, 오셨네요. 이번에도 감기약을 사러 오신거 맞죠?”
“아, 네ㅡ. 아하하, 감기약이 다 떨어져서….”
“매 시험기간만 되었다하면 감기약을 자주 사러 오시던데, 괜찮으세요?”
“네네, 괜찮아요. 아, 저ㅡ 그리고 소화제도 좀 주시겠어요?”
“소화제요?”
“네. 요즘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아서…. 아, 감사합니다.”
“아, 이 비타민은 서비스로 드릴게요. 감기예방에도 좋으니까요, 요새 독감이 유행이라 조심하시라고 드리는거에요.”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나는 약사님께 인사를 드린 후, 약국을 빠져나왔다. 약국 앞에서 약사님께 받은 약들과 비타민들을 보며 에리 생각이 났다.
이 비타민은 에릿치에게 줘야겠구마ㅡ. 요새 독감이 유행이라니께 더 조심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제.
나는 약을 챙기고 이번엔 마트로 발길을 돌렸다. 마트에 들어오자마자 장바구니를 들어 에리가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고기를 사고 그리고 에리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챙긴 후 마지막으로 물을 챙겨 계산을 하고 나왔다. 이제, 에리가 집으로 오기까지 앞으로 30분. 나는 얼른 집으로 발길을 서둘렀고, 집에 도착하니 20분 후에 도착해야할 에리가 소파에 누워있었다. 나는 에리가 걱정돼, 장 본 것을 식탁위에 두고 에리에게 다가갔다. 이미 씻고 잠옷으로 갈아 입은건지 여전히 열이 심하게 오른 상태였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감기가 걸린 것 같아 보였다. 나는 에리를 일으켜 침대에 눕혔고, 에리는 간신히 눈을 떠 내 눈을 바라보았다. 에리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눈빛으로도 고맙다는 말이 들려와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 나는 서둘러 수건에 물을 적셔 에리의 이마 위에 올려주었고, 에리는 여전히 쌕쌕대며 힘들어했다.
아, 에릿치에게 약 먹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한담. 지금 에릿치 빈 속일텐데, 죽이라도 끓여야 하겠구마ㅡ.
옆에서 에리의 얼굴을 바라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 못하는 요리 실력으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요리 담당은 에리였기에 나는 그저 받아 먹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에리를 위해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설프게 만든 죽이 완성이 되었고, 그릇에 담아 물과 약을 챙겨 에리에게 갔다. 에리는 여전히 힘들어했고, 차가웠던 수건은 어느새 미지근해져있었다. 죽을 담아뒀던 그릇을 선반에 둔 후 잠시 에리를 깨웠다.
“에릿치, 죽이라도 먹그라.”
“ㅇ,아. 노조미….”
“약이라도 먹는게 낫지 않겠나, 한 숟갈이라도 먹으레이.”
에리는 더 이상 말할 힘이 없는 건지 고개를 저었고, 나는 억지로라도 일으켜 죽을 떠 후후 불며 식힌 후 에리의 입가에 숟가락을 내밀었다. 에리는 나의 고집에 질 수 없다는 듯, 억지로 입을 벌려 죽을 먹었고 그리곤 더 이상 못먹겠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누으려 할 때, 나는 물과 약을 에리에게 건냈다. 에리는 먹을 힘도 없다는 듯 누으려 했고, 나는 그런 에리를 위해 약을 입술로 물은 후 에리의 입 안에 넣게 했다. 에리는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고, 그리고 물을 입 안에 머금은 후 다시 한 번 에리의 입 안으로 넣게 했다. 에리는 내가 건넨 약과 물을 삼켰고, 그리고 뭐라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아 살짝 째려보는 걸로만 끝내곤 다시 누웠다. 나는 다시 에리의 이마 위에 차가운 물에 담근 수건을 올려두었고, 거실로 나가려는 때에 내 옷자락을 잡는 에리의 손길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에리는 어리광쟁이로 변했는지, 조금씩 울먹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그 옆에 앉아 에리의 손을 잡으며 이마에 올려둔 수건으로 땀을 조금씩 닦아 주기 시작했다. 에리의 몸에도 다시 땀이 나기 시작해, 아까 전에 샤워한 것은 어디로 간건지 잠옷이 축축해 지기 시작했다. 에리의 몸을 일으켜 잠옷을 벗게 한 후 수건으로 땀을 닦고 싶지만 그러기엔 에리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조금이라도 재우는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에리는 쌕쌕 대며 잠에 들었고 나는 자는 에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러시아 쿼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건지 높은 코와 입술로 내려가는 그 선이 좋았다.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잠시 살다왔으니 감기에는 강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매 시험기간 마다 감기에 걸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곤 했다. 다시 미지근해진 수건을 물에 적셔 이마에 올려두었고, 약과 물을 부엌에다 놓으려 일어날 때 에리가 무의식적인건지 내 손을 꽉 잡고 안놔줬다.
“으음, 노조미….”
에리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에리의 얼굴로 다가가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그 때,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처럼 에리의 눈은 살며시 떠졌고 에리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에리의 입 안은 뜨거웠고, 혀도 데일 것 같이 뜨거웠다. 긴 것 같으면서도 짧은 입맞춤이 끝났을 때 에리의 얼굴은 더 붉어졌고,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노조미, 감기…옮아.”
“괜찮데이, 에릿치의 감기라면 옮고 싶구마.”
“내가 안괜찮아. 아, 더워.”
“에릿치, 땀 많이 흘렸으니께. 자, 만세 해보레이. 만세ㅡ.”
“에, 만세라니. 괜찮아, 지금 괜찮아진 것 같으니 샤워 하면 돼.”
“그렇게 무리하다 지난 번에도 샤워하고 나오면서 쓰러진 적 있지 않았나, 그러니 이번엔 내 말 좀 들어도.”
“아, 알았어…. 부탁…할게.”
에리는 부끄러워하며 윗 옷을 벗었고, 나는 수건에 다시 한 번 물을 적셔 땀이 났던 등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에리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랐고, 부끄러워하는 에리의 모습이 귀여웠다. 등을 다 닦아준 후, 앞을 닦아주려 할 때 에리는 필사적으로 괜찮다며 자신이 하겠다 하였고 나는 그저 알았다고 말을 하고 새 잠옷을 건네주었다. 그리곤 식었던 죽을 다시 들고 가 냄비에 부어 데우기 시작했고, 데운 죽을 다시 가져오니 이미 다 닦았는지 에리는 새 잠옷으로 갈아 입은 후 침대 머리 맡에 걸터 반쯤 누워있었다. 죽을 선반 위에 둔 후 에리의 이마에 손을 대니 여전히 미열은 있었고, 침대에 걸터 앉아 선반에 둔 죽을 호호 불어 조금씩 식히며 죽을 한 숟가락 떠 에리에게 줬다.
“노조미, 내가 먹을게.”
“으응, 아니레이. 내가 먹여줄거구마. 그러니, 에릿치는 얌전히 먹으레이.”
내 말을 들은 에리는 잠시 당황해하다 피식 웃으며 입을 벌렸다. 자연스레 죽을 받아 먹기 시작했고, 아까 전에 다 못먹은 죽이 어느 새 바닥이 보일 정도로 다 받아 먹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에리는 조금만 더 자겠다며 누웠고 그리곤 나를 쳐다보았다.
“노조미, 내 옆 누워주면 안될까?”
“에, 그래도 되나?”
“아, 아냐. 노조미 감기 옮으니까, 안 돼.”
“괜찮데이. 자자, 에릿치는 얼른 자그라. 내가 팔베개 해주까?”
“파, 팔베개라니…! 괜찮아.”
“으응, 내가 해주고 싶데이.”
나는 말을 마친 후, 에리의 머리를 들어 팔베개를 했다. 그리곤 에리를 감싸 안아 등을 조금씩 토닥였고 에리는 처음엔 어색해하다 눈을 감더니 조금 있다 숨소리만 조용히 들려왔다. 조용한 공간에서 에리의 자는 숨소리만 들리니 나도 점점 졸리기 시작했고, 나도 눈을 감아 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는데, 에리와 내가 나왔다. 에리는 나를 다정하게 쳐다보다 슬픈 눈으로 쳐다보더니 입맞춤을 짧게 해주곤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곤, 에리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 순간 목소리가 안나왔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에리의 떠나는 뒷 모습만을 바라 보다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리고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니 에리가 나를 걱정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노조미, 괜찮아?”
“에…, 괜찮냐니….”
“지금 울고 있잖아, 무슨 안좋은 꿈이라도 꾼거야?”
에리의 말에 내 눈을 만져보니 눈물 자국이 났다. 꿈이라는 사실에 안심이 돼, 에리의 품에 안겨 울었고 에리는 괜찮다며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나는 아픈 아이에게 어리광을 부렸다는 사실을 깨닫곤 부끄러워져 바로 품 안에서 떨어졌고, 에리의 얼굴을 살펴보니 이제 괜찮아졌는지 열도 내려져있었다. 그리곤 내 얼굴을 잡더니 짧게 볼에 입맞춤을 해줬다.
“노조미가 간호해준 덕분에 이렇게 빨리 열이 내려간 것 같아. 그래도 아직까진 감기기운이 있으니, 노조미가 내 감기 옮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빨리 낫도록 노력할테니까, 응?”
“에릿치….”
“그리고,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디 안갈거야. 나는 평생 노조미 옆에서 지낼거니까 노조미야말로 내 옆에 계속 있어줘야 돼?”
“그거야, 당연한거 아이가….”
“응. 그거면 충분해. 우리 이제 밥 먹을까?”
“응.”
에리의 말에 그저 웃으며 손을 잡았다. 우리는 웃으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에게 배려를 할 것이며 서로만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지낼 것이며 에리가 감기에 걸리면 내가 간호를 하면 되는 것이고, 내가 감기에 걸리면 자연스레 에리가 간호를 해줄 것이다. 뭐, 가끔은 그게 엉큼할 때도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에리의 다정한 눈동자가 좋고,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좋다. 에리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행복하고, 이렇게 평생 에리와 함께 지내고 싶다. 몇 십년이 지난 후, 할머니가 되어서도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줄 에리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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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핑퐁
오랜만에 써본 1인칭 시점이라 마음에 안들긴 하지만 ㅏ니라머ㅣㅇ러니아러ㅣ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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